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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석 편집국장의 詩 ···강은 아직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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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81
  • 2026.10.15 21:42
 
 
강은 아직 흐른다
 
(詩:방명석)
 
어린 날의 강물은
가난한 산허리를 돌아
이름 모를 들꽃 곁으로 흘렀다.
 
나는 그 강가에서
먼 산의 푸른 꿈을 바라보았고
바람이 넘겨 주는 나뭇잎의 글씨를 읽으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렸다.
 
해 질 녘이면
논두렁에 번지던 노을 한 자락,
그 붉은 빛을 가슴에 접어 넣고
나는 세상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갔다.
 
별들이 하나둘
어둠의 지붕 위에 피어나면
소년의 작은 방에는
접어 둔 꿈 하나가 잠들지 못했다.
 
새벽은 늘 나보다 먼저 깨어 있었고
나는 어둠을 등에 지고
세상의 소식을 품에 안은 채
골목마다 아침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먼동이 산마루를 붉게 물들일 때
나는 신문 속 활자들을 읽으며
세상에도 수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다.
 
낮에는 햇살 아래 삶을 배우고
밤에는 희미한 등불 아래
내일의 문장을 익혔다.
 
창밖의 달은
가난한 지붕 위에서도 공평하게 빛났고
어린 가슴에 내린 별빛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나만의 희망이었다.
 
한때 내 청춘은
푸른 파도처럼 뜨거웠다.
 
링 위에 서면
두려움도 땀방울에 씻겨 가고
왼손에 모은 젊음으로
저 높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때로
피어나는 꽃보다 먼저
꽃잎을 떨구는 바람을 보내온다.
 
한순간 스쳐 간 칼날,
다시 돌아오지 못한 친구의 이름.
그날 이후
내 마음의 들판에는
오래도록 비가 내렸다.
 
젊은 날의 푸른 꿈은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흔들렸고
가슴에 묻은 이름 하나는
밤마다 별이 되어
내 잠든 창가를 찾아왔다.
 
아, 친구여!
 
너는 어느 하늘의 별이 되어
내가 걷는 길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가끔
저녁 하늘을 오래 바라본다.
 
떠난 이들은 말이 없고
남겨진 강물은 말없이 흐르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삶은 다시 살아갈 이유를 건네곤 한다.
 
산은 무너진 가지를 탓하지 않고
강은 돌아가는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겨울을 견딘 나무가
다시 봄의 푸른 잎을 틔우듯
나도 내 안의 폐허를 지나
조용히 새싹 하나를 품었다.
 
다시 배우리라.
 
아직 내게 남은 날들이 있다면
그날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낮에는 땀으로 하루를 일구고
밤에는 책장을 넘기며
별빛보다 더 먼 곳을 꿈꾸었다.
 
늦은 밤 창문에 기대면
나무들은 말없이 나를 지켜 주었고
달빛은 책 위에 내려앉아
지친 문장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남들보다 조금 늦어도 좋았다.
 
한 걸음이 비틀거려도 괜찮았다.
 
내 안에 배움의 샘이 마르지 않는 한
나는 아직 젊은 사람이었고
내일을 향해 열려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마침내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골목 끝 작은 가게의 한숨에도
저무는 농부의 어깨 위에도
도시의 소란한 광장과
차가운 국회의 복도에도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의 빛으로 흔들렸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수많은 사연의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의 눈물에는
말하지 못한 겨울이 있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에는
견뎌 온 가슴 시린 긴 세월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의 삶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일,
세상의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하늘의 별처럼 잊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내 머리 위에도
조금씩 서리꽃이 피어났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피어 있었고
잃어버린 것들 사이로
뜻밖의 인연들이 꽃을 피웠다.
 
가난은 내게 낮은 곳을 보게 했고
상실은 다른 이의 눈물을 알게 했으며
배움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날마다 새롭게 가르쳐 주었다.
 
이제 나는
인생의 저녁 강가에 앉아
흘러온 물결을 바라본다.
 
저 멀리 드리운 산 아래 그림자는 길어지고
황홀한 저녁 노을 갈대의 흰 머리칼 사이로
저녁바람이 천천히 지나간다.
 
한 권의 책을 오래 읽은 사람처럼
나는 내 삶의 페이지를
한 장씩 조심스레 넘겨 본다.
 
잘못 적은 문장도 있었으리라.
 
끝내 지우지 못한 눈물도 있었으리라.
 
조금 더 사랑했어야 할 사람,
조금 더 따뜻하게 잡아 주었어야 할 손도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지나온 모든 계절이
내 삶의 한 부분이었음을
이제는 조용히 받아들이려 한다.
 
낙엽이 떨어져도
나무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듯
저녁이 온다고
하늘의 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내 삶의 마지막 책장을
언젠가 넘겨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아직 배우고 싶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내 앎이 조금 더 깊어지기를,
새벽 이슬이 들꽃을 적시듯
내 마음이 조금 더 맑아지기를.
 
학문의 높은 문턱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처음 책을 펼치던
그 소년의 마음으로 서 있고 싶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알아 가는 기쁨을 사랑하며
나이가 들어도
배움 앞에서는 늘 새잎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남은 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힘을 나만을 위해 쓰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찬 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들,
기댈 어깨 하나 없이
긴 밤을 건너는 이들 곁에
말없이 놓이는 작은 등불이고 싶다.
 
누군가의 굽은 등에
잠시나마 따뜻한 햇살이 되고
누군가의 메마른 하루에
작은 물 한 모금이 되고 싶다.
 
내가 배운 것들이
나만의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고
누군가의 내일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가 된다면,
내가 걸어온 굽은 길도
마침내 꽃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저녁노을은 강물 위에 번지고
먼 산은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아직 남아 있는 길을 바라본다.
 
어제의 바람은 지나갔고
오늘의 강물은 흘러가지만
저 너머 새벽의 빛은
벌써 산등성이를 물들이고 있다.
 
삶은 끝내 한 권의 책이 되겠지만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내 가슴에는 푸른 여백 하나
남겨 두고 싶다.
 
더 배우고 싶은 꿈 하나,
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으로 머물고 싶은 마음.
 
아직 나의 강은 흐른다.
배움의 별을 따라
희망의 언덕을 넘어
마침내 사랑의 바다에 닿을 때까지.
 
나는 오늘도
책장을 펼치고
세상의 낮은 곳을 바라보며
내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인생의 황혼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의 별은 더욱 맑게 빛나고,
내가 배운 모든 것이
누군가의 따뜻한 봄이 되기를.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장 아름답게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시작 노트〉
 
돌아보면 내 삶은 굽이진 강물과도 같았다. 가난한 어린 시절, 문학을 꿈꾸던 소년의 설렘, 젊은 날의 뜨거운 열정과 가슴 아픈 상실, 그리고 일과 배움을 함께하며 걸어온 긴 세월까지. 때로는 거센 물살에 휩쓸리고 때로는 낯선 물길 앞에서 머뭇거렸지만, 삶은 끝내 내게 다시 걸어갈 길을 내어 주었다.
 
어린 날의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새벽의 찬 바람과 산마루에 번지는 먼동, 밤하늘에 고요히 빛나는 별들은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내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땀 흘리고 밤에는 책을 펼치며 미래를 꿈꾸던 시간, 신문 속 활자를 따라 세상을 읽던 그 작은 습관은 훗날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기자의 길로 이어졌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꿈꾸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젊은 날의 꿈을 접어야 했던 아픔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인고의 세월속에서도 낯선 세상 앞에 다시 섰을 때도 앞날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끝내 놓을 수 없는 마음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다시 배우고 싶다는 열망,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낮에는 일터에서 삶을 배우고 밤에는 책 속에서 길을 찾았다. 배움은 내게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고,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등불이었다. 그렇게 문학을 꿈꾸던 소년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자가 되었고, 지역의 골목에서 국회의 현장까지 세상의 목소리를 따라 걸어왔다.
 
이 시를 쓰며 나는 다시 자연을 바라보았다. 굽이쳐도 멈추지 않는 강물에서 삶의 인내를, 겨울을 견디고 새잎을 틔우는 나무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저녁노을 속에서 지나온 세월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발견하고 싶었다. 자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가는 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제 나는 인생의 저녁 강가에 앉아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돌아본다.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책장을 넘겨야 할 날이 오겠지만, 아직 내 안에는 펼치지 못한 책이 있고 배우지 못한 세상이 있다. 그러므로 나의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바라보며, 남은 시간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싶다.
 
그리고 내가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이 나만의 성취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삶의 그늘에서 외롭게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받은 배움과 세상의 사랑을 다시 나누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내 삶에 더해 가고 싶은 또 하나의 꿈이다.
 
강물은 흘러온 길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그 모든 물길을 품고 바다로 향한다. 나 역시 지나온 상처와 기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아직 남아 있는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나의 강은 아직 흐른다.
 
배움의 별을 따라, 희망의 언덕을 넘어, 마침내 사랑의 바다에 닿을 때까지. 그것이 내가 이 시에 담고 싶었던 삶의 고백이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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